2013년 5월 28일 화요일

허공바위

소가 7개의 칼을 몸에 맞고서 쓰러져 있는 것을 마을사람들이 발견하여 안골, 각심절, 벼루말 동네사람들이 산제를 지낸 것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소 한 마리를 통째로 잡아서 제를 지냈으나 밀도살을 할 수 없어서 지금은 약식으로 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제각이 있어서 그곳에 모든 제기를 보관하고 음식을 준비 했으나 6.25 전쟁으로 소실되어 버렸습니다. 

허공바위에서 제를 올리는데 흰 천으로 양 옆을 두르고 천신의 기를 받아야 하므로 하늘을 막지않고 지냈습니다. 

동네 사람에게 가장 존경받는 어르신이 제주가 되어서 3일간 외부의 출입을 하지 않았으며 누구와도 접촉하기 않고서 경건한 마음으로 제를 지냈습니다. 

1년에 3회 지냈는데 2월 초하루는 통합적으로 제를 지냈고, 6월 초하루는 할머니 산제라 하여 간소하게 소 내장으로 산 밑에서 지냈으며, 10월 초하루는 통소를 잡아서 지냈다고 합니다. 

지금은 10월에 한번 제를 올린다고 합니다. 

노원구에는 마을 공동체 의식이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월계동

안골 치성제(월계동)
소가 7개의 칼을 몸에 맞고서 쓰러져 있는 것을 마을사람들이 발견하여 안골, 각심절, 벼루말 동네사람들이 산제를 지낸 것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전한다. 예전에는 소 한 마리를 통째로 잡아서 제를 지냈으나 밀도살을 할 수 없어서 지금은 약식으로 제를 올리고 있다. 이전에는 제각이 있어서 그곳에 모든 제기를 보관하고 음식을 준비 했으나 6.25 전쟁으로 소실되어 버렸다. 허공바위에서 제를 올리는데 흰 천으로 양 옆을 두르고 천신의 기를 받아야 하므로 하늘을 맞지않고 지냈다. 동네 사람에게 가장 존경받는 어르신이 제주가 되어서 3일간 외부의 출입을 하지 않았으며 누구와도 접촉하기 않고서 경건한 마음으로 제를 지냈다. 1년에 3회 지냈는데 2월 초하루는 통합적으로 제를 지냈고, 6월 초하루는 할머니 산제라 하여 간소하게 소 내장으로 산 밑에서 지냈으며, 10월 초하루는 통소를 잡아서 지냈다. 지금은 10월에 한번 제를 올린다.

녹천마을 치성제(월계동)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이유대감이 벼슬을 그만두고 경치 좋고 한적하며 조용한 곳을 찾아 기거하기를 바랬다. 그래서 처음 이곳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이곳에 마을이 형성되었고 그의 호가 녹천이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녹천마을로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녹천대감을 기리는 치성제를 지내게 되었는데 결구 이 치성제가 마을 공동의 제사로 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음력 2월 초하루와 6월 초하루, 10월 초하루에 제사를 지낸다. 또한 치성제의 신주(神主)인 녹천대감의 생신날(음력 2월 16일)이 따로 있어 그 날도 면국수와 산적 등의 제사음식을 차려 간소하게 제주(祭主)가 제(祭)를 지낸다.

월계동 각심제(월계동)
월계2동 마을에 큰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이 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구능 할머니, 할아버지라 불렀으며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없어졌다. 매년 10월 초순 좋은날을 받아 마을의 대동단결을 위해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치성제이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조선 태종이 임금 왕위에 올랐을 때 흉년, 질병으로 민심이 흉흉해져 각심사 고승에게 도움을 청하자 고승의 말대로 온갖 정성을 다해 지신께 제를 올리자 그 뒤로 풍년과 함께 질병도 돌지 않았다고 하며 이때 드리는 제사를 각심제라 부르게 된 것이다.


공릉동

공덕굴 치성제(공릉동)
먹골 늑대할머니 무당의 오래된 굿터로 수양딸인 무당에게 전수되어 지금까지 만신이 한번도 바뀐적이 없다고 한다. 떡, 쇠머리, 과일 등을 차려놓고 마을의 평안을 기리는 전형적인 대동굿이다. 굿은 2년에 한번으로 짝수해인 음력 초이틀이나 초사흘날에 치러진다. 굿날이 정해지면 우물터 주위에 외로 꼰 새끼줄로 금줄을 쳤으며 마을사람들은 출입을 삼가고 부정이 없는 가정을 시주, 화주, 도가로 정해 3일 전부터 굿 준비에 들어갔으며 굿에 필요한 비용은 각 가정에서 추렴하였다. 떡시루가 아홉 개인데 각 떡시루에는 바치는 이의 이름이 있으며 굿거리는 전형적인 12거리이다.


하계동

용동부락산신제
하계1동 전통 산신제로 음력 2월 1일과 10월 1일 두 차례 모셔지며, 용동부락 노인정에서 동북쪽으로 약 500m정도 올라간 불암산 기슭 마을 뒷산 중턱에 있는 큰 널석바위에서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산신제를 지낸다.


중계동

은행마을 대동굿
2년에 한번씩 짝수해인 10월 1,2,3일 중 좋은날을 받아 ‘도당할아버지’를 모시는 마을 전통굿으로서 이웃 광석마을 대동굿인 ‘도당 할머니’를 모시는 굿과 함께 열리기도 했으며 두 어른의 혼을 달래줌으로써 마을의 일이 잘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하루 동안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즐겁게 놀았다. ‘대동 단결한다’의 의미로 오늘날까지 행해지고 있다.

구능치성제
마을의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 느티나무에 살았다고 전해지는 구능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는 제사로서 중계4동 144번지 근처에 치성터가 있다. 이 치성터 주위에는 큰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으며 제삿날은 매년 음력 9월 14일이다.

불암산신제
중계본동 1통에서 8통은 1967년부터 각지에서 모여든 철거민들의 이주촌으로서 어렵게 마을을 형성한 탓인지 서로 융화되지 못하고 불화가 잦았다. 이에 이를 막아보자는 의미에서 불암 산신제가 시작되었으며, 당시 6통 통장이던 정씨가 풍수를 보았는데 그들이 정착한 104번지 일대가 원래는 용이 누운 형상 이었는데 이주민이 정착하면서 그 용이 노했기에 많은 불화와 갈등이 일어난다고 하였다. 그래서 풍수를 보아 용의 턱자리에 정성껏 음식을 올리고 1988년까지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그곳은 104번지 주민들이 살고있는 곳과는 거리도 멀고 당시 제를 모시던 분들이 그곳까지 오기가 불편하여 1989년부터는 음력 4월 좋은날을 받아 1통 은혜사 앞에 터를 마련하여 현재 제사를 모시고 있다.


상계동

간촌마을 산신제
옛날부터 나라의 번영과 마을의 안녕을 위해 우두정(牛頭井)의 물을 길어 지냈다. 음력 7월 초하루와 10월 초하루 연 2회 산신제를 지내며, 산신제 터는 상계5동 금호아파트 단지에서 수락산 자락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 우측면 계곡으로 올라가면 배드민턴 클럽이 나오고 입구 계곡에 산신제 터가 있다.

벽운마을 산신제
조선 영조때 영의정을 지낸 홍봉한이 그 별당 우우당에 기거하면서 여러 인사들과 모여 나랏일을 논의 하였는데 그때 국가의 안녕과 마을의 무사함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어 오늘까지 이어졌다. 제사는 매년 3월과 9월에 지낸다. 특이한 점은 돼지머리와 술을 사용하는 일반제사와 달리 생수와 북어 등 마른 해물을 제물로 이용하는데, 이곳 지형이 음(陰) 기운이 강한 암산(女山)이기 때문이다. 우우당에서 수락산으로 약 10분 정도 올라가면 벽운산악회 건물이 나오는데 산신제 터는 건물뒤 산기슭에 있다.

당고개 산신제
과거 산림이 우거진 험준한 산골로 야생동물의 출현이 빈번하여 사람의 통행이 매우 어려운 고개였다. 이에 통행인들이 자신의 몸을 보호할 목적으로 돌을 들고 고개를 넘게되었고 고개를 무사히 넘은 뒤 필요 없어진 돌을 던져 놓았는데 돌이 하나 둘 자연스럽게 쌓이게 되어 돌무덤이 되었다. 이후 이곳은 동네 주민들의 기원을 비는 성황당이 되어 전래신앙을 숭상하던 많은 사람들이 매년 1월 15일 몸을 단정히 한 후 노송나무에 금줄을 치고 오색천을 두른 후 동네 재앙을 물리치는 산신제를 지냈다고 한다. 현재는 아파트 단지와 상가가 도로를 중심으로 주변에 들어서있다. 성황당이 있었던 자리에 산신제의 유래를 기록한 당고개 표석만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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