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8일 화요일

녹천의유래_초안산나들길

녹천마을은 월계동의 중심인 월계2동683,685번지일대를 말합니다.

월계동의 중심이 되는 녹촌은 녹천(鹿川)이라고도 합니다.

북한산 지맥으로 이어진 크고 작은 산맥이 월계동 근방에 오면 높이 100m 내외의 야산으로 변하는데 그 사이로 계곡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곳의 하천은 두 가닥으로 시작해서 767번지 근방에서 하나로 합쳐집니다.

이 모습이 마치 사슴 머리에 난 뿔 같다 하여 녹촌이라 불렀습니다.

조선 중기때 중랑천이 범람해서 우이천까지 물이 흘러들어 가는 큰 홍수로 인해 지금의 월계로 근방 마을은 모두 폐허가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황급히 뒷산으로 이주하여 인명에는 피해가 없었지만 가재도구와 넓은 논밭이 온통 황토흙으로 뒤엎여 살길이 막막해졌음을 통탄하면서 이에 대한 대책마련을 위해 능록의 뒷산에 모여 회의를 소집 하였습니다.

회의석상에서 마을의 촌주 한사람이 지난밤 꿈에 신선을 만나 내일 있을 회의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물었을 때 신선은 내일 정오에 중랑천가에 푸른사슴 한 마리가 내려와 목욕을 할 것이니 제물을 준비해 두었다가 사슴에게 바치고 마을에서 가장 예쁘고 정숙한 처녀 한사람을 사슴에게 시집보내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답을 해주고는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반대하는 의논도 있었으나 이왕 폐허가 된 마을을 살리는 방법이니 한번 실행해보자는 의견으로 기울어 마침내 염씨(簾氏) 집의 15세 난 딸을 사슴에게 시집보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며칠 후 신선이 시킨대로 산 정상에 제물을 준비하여 사슴이 내려오기를 기다리자 과연 사슴 한 마리가산에서 내려와 중랑천에서 목욕을 하였습니다.

마을 회의에서 결정한대로 염씨 처녀를 곱게 단장시켜 제물 옆에 다소곳하게 앉혀 두었는데 목욕을 끝낸 사슴이 등을 돌리며 처녀더러 타라는 시늉을 하였다. 처녀는 사슴이 시킨대로 등에 올라탔는데 처녀를 태우고 동네를 한바퀴 돌아본 사슴이 766번지 쯤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지금의 하천이 생긴 방향으로 사라졌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사슴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자멀리서 물줄기 두 개가 나무가지 모양으로 흐르기 시작하더니 중간쯤에서 합쳐서 한줄기로 되면서 황토흙으로 뒤덮였던 마을 앞 전답이 기름진 검은색으로 변했습니다. 

사람들이 이 신기한 일에 놀라워하자 그중 한 사람이 "이건 사슴과 결혼한 염씨 처녀의 눈물이니 냇물 이름을 녹천이라 하자"고 제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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