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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14일 일요일

초안 불암 수량파악 (20130715)

초록숲길(쌍문역사산책길, 초안산나들길)초안산쌍문
1.안내판기존 변경기존 변경
1) 방향안내판450*120*1700개소21101289
2) 구간 안내판450*600*1500개소74344
3) 위치 안내판250250개소13260646068
5) 종합안내판 (소)개소32221
6) 종합안내판 보수개소222
7) 기존 안내판 보수개소22121
8) 이용계도안내판330*450*1300개소43222
9) 방향유도 바닥120*120개소8020206060
10) 식물이름표120*120개소10050505050
합 계
2.자연해설판
1) 자연해설판450*600*150017109108
2) QR코드 홈페이지 작성페이지6030303030





초록숲길(쌍문역사산책길, 초안산나들길)
초안산
쌍문
1.안내판
기존
변경
기존
변경
1) 방향안내판
450*120*1700
개소
21
10
12
8
7
2) 구간 안내판
450*600*1500
개소
7
4
3
4
4
3) 위치 안내판
250250
개소
132
60
64
60
68
5) 종합안내판 (소)
개소
3
2
2
2
1
6) 종합안내판 보수
개소
2
2
2
7) 기존 안내판 보수
개소
2
2
1
2
1
8) 이용계도안내판
330*450*1300
개소
4
3
2
2
2
9) 방향유도 바닥
120*120
개소
80
20
20
60
60
10) 식물이름표
120*120
개소
100
50
50
50
50
합 계
2.자연해설판
1) 자연해설판
450*600*1500
17
10
9
10
8
2) QR코드 홈페이지 작성
페이지
60
30
30
30
30


초안 불암 수량 파악 기존의 계획과 약간의 변동이 있음 

방향안내판의경우 수량이 늘어나고 
몇 몇 사인시설은 변경되었음 

한 차례 정밀 조사를 통하여 변경이 될 수 있음 

2013년 5월 28일 화요일

허공바위

소가 7개의 칼을 몸에 맞고서 쓰러져 있는 것을 마을사람들이 발견하여 안골, 각심절, 벼루말 동네사람들이 산제를 지낸 것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소 한 마리를 통째로 잡아서 제를 지냈으나 밀도살을 할 수 없어서 지금은 약식으로 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제각이 있어서 그곳에 모든 제기를 보관하고 음식을 준비 했으나 6.25 전쟁으로 소실되어 버렸습니다. 

허공바위에서 제를 올리는데 흰 천으로 양 옆을 두르고 천신의 기를 받아야 하므로 하늘을 막지않고 지냈습니다. 

동네 사람에게 가장 존경받는 어르신이 제주가 되어서 3일간 외부의 출입을 하지 않았으며 누구와도 접촉하기 않고서 경건한 마음으로 제를 지냈습니다. 

1년에 3회 지냈는데 2월 초하루는 통합적으로 제를 지냈고, 6월 초하루는 할머니 산제라 하여 간소하게 소 내장으로 산 밑에서 지냈으며, 10월 초하루는 통소를 잡아서 지냈다고 합니다. 

지금은 10월에 한번 제를 올린다고 합니다. 

노원구에는 마을 공동체 의식이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월계동

안골 치성제(월계동)
소가 7개의 칼을 몸에 맞고서 쓰러져 있는 것을 마을사람들이 발견하여 안골, 각심절, 벼루말 동네사람들이 산제를 지낸 것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전한다. 예전에는 소 한 마리를 통째로 잡아서 제를 지냈으나 밀도살을 할 수 없어서 지금은 약식으로 제를 올리고 있다. 이전에는 제각이 있어서 그곳에 모든 제기를 보관하고 음식을 준비 했으나 6.25 전쟁으로 소실되어 버렸다. 허공바위에서 제를 올리는데 흰 천으로 양 옆을 두르고 천신의 기를 받아야 하므로 하늘을 맞지않고 지냈다. 동네 사람에게 가장 존경받는 어르신이 제주가 되어서 3일간 외부의 출입을 하지 않았으며 누구와도 접촉하기 않고서 경건한 마음으로 제를 지냈다. 1년에 3회 지냈는데 2월 초하루는 통합적으로 제를 지냈고, 6월 초하루는 할머니 산제라 하여 간소하게 소 내장으로 산 밑에서 지냈으며, 10월 초하루는 통소를 잡아서 지냈다. 지금은 10월에 한번 제를 올린다.

녹천마을 치성제(월계동)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이유대감이 벼슬을 그만두고 경치 좋고 한적하며 조용한 곳을 찾아 기거하기를 바랬다. 그래서 처음 이곳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이곳에 마을이 형성되었고 그의 호가 녹천이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녹천마을로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녹천대감을 기리는 치성제를 지내게 되었는데 결구 이 치성제가 마을 공동의 제사로 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음력 2월 초하루와 6월 초하루, 10월 초하루에 제사를 지낸다. 또한 치성제의 신주(神主)인 녹천대감의 생신날(음력 2월 16일)이 따로 있어 그 날도 면국수와 산적 등의 제사음식을 차려 간소하게 제주(祭主)가 제(祭)를 지낸다.

월계동 각심제(월계동)
월계2동 마을에 큰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이 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구능 할머니, 할아버지라 불렀으며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없어졌다. 매년 10월 초순 좋은날을 받아 마을의 대동단결을 위해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치성제이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조선 태종이 임금 왕위에 올랐을 때 흉년, 질병으로 민심이 흉흉해져 각심사 고승에게 도움을 청하자 고승의 말대로 온갖 정성을 다해 지신께 제를 올리자 그 뒤로 풍년과 함께 질병도 돌지 않았다고 하며 이때 드리는 제사를 각심제라 부르게 된 것이다.


공릉동

공덕굴 치성제(공릉동)
먹골 늑대할머니 무당의 오래된 굿터로 수양딸인 무당에게 전수되어 지금까지 만신이 한번도 바뀐적이 없다고 한다. 떡, 쇠머리, 과일 등을 차려놓고 마을의 평안을 기리는 전형적인 대동굿이다. 굿은 2년에 한번으로 짝수해인 음력 초이틀이나 초사흘날에 치러진다. 굿날이 정해지면 우물터 주위에 외로 꼰 새끼줄로 금줄을 쳤으며 마을사람들은 출입을 삼가고 부정이 없는 가정을 시주, 화주, 도가로 정해 3일 전부터 굿 준비에 들어갔으며 굿에 필요한 비용은 각 가정에서 추렴하였다. 떡시루가 아홉 개인데 각 떡시루에는 바치는 이의 이름이 있으며 굿거리는 전형적인 12거리이다.


하계동

용동부락산신제
하계1동 전통 산신제로 음력 2월 1일과 10월 1일 두 차례 모셔지며, 용동부락 노인정에서 동북쪽으로 약 500m정도 올라간 불암산 기슭 마을 뒷산 중턱에 있는 큰 널석바위에서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산신제를 지낸다.


중계동

은행마을 대동굿
2년에 한번씩 짝수해인 10월 1,2,3일 중 좋은날을 받아 ‘도당할아버지’를 모시는 마을 전통굿으로서 이웃 광석마을 대동굿인 ‘도당 할머니’를 모시는 굿과 함께 열리기도 했으며 두 어른의 혼을 달래줌으로써 마을의 일이 잘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하루 동안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즐겁게 놀았다. ‘대동 단결한다’의 의미로 오늘날까지 행해지고 있다.

구능치성제
마을의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 느티나무에 살았다고 전해지는 구능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는 제사로서 중계4동 144번지 근처에 치성터가 있다. 이 치성터 주위에는 큰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으며 제삿날은 매년 음력 9월 14일이다.

불암산신제
중계본동 1통에서 8통은 1967년부터 각지에서 모여든 철거민들의 이주촌으로서 어렵게 마을을 형성한 탓인지 서로 융화되지 못하고 불화가 잦았다. 이에 이를 막아보자는 의미에서 불암 산신제가 시작되었으며, 당시 6통 통장이던 정씨가 풍수를 보았는데 그들이 정착한 104번지 일대가 원래는 용이 누운 형상 이었는데 이주민이 정착하면서 그 용이 노했기에 많은 불화와 갈등이 일어난다고 하였다. 그래서 풍수를 보아 용의 턱자리에 정성껏 음식을 올리고 1988년까지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그곳은 104번지 주민들이 살고있는 곳과는 거리도 멀고 당시 제를 모시던 분들이 그곳까지 오기가 불편하여 1989년부터는 음력 4월 좋은날을 받아 1통 은혜사 앞에 터를 마련하여 현재 제사를 모시고 있다.


상계동

간촌마을 산신제
옛날부터 나라의 번영과 마을의 안녕을 위해 우두정(牛頭井)의 물을 길어 지냈다. 음력 7월 초하루와 10월 초하루 연 2회 산신제를 지내며, 산신제 터는 상계5동 금호아파트 단지에서 수락산 자락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 우측면 계곡으로 올라가면 배드민턴 클럽이 나오고 입구 계곡에 산신제 터가 있다.

벽운마을 산신제
조선 영조때 영의정을 지낸 홍봉한이 그 별당 우우당에 기거하면서 여러 인사들과 모여 나랏일을 논의 하였는데 그때 국가의 안녕과 마을의 무사함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어 오늘까지 이어졌다. 제사는 매년 3월과 9월에 지낸다. 특이한 점은 돼지머리와 술을 사용하는 일반제사와 달리 생수와 북어 등 마른 해물을 제물로 이용하는데, 이곳 지형이 음(陰) 기운이 강한 암산(女山)이기 때문이다. 우우당에서 수락산으로 약 10분 정도 올라가면 벽운산악회 건물이 나오는데 산신제 터는 건물뒤 산기슭에 있다.

당고개 산신제
과거 산림이 우거진 험준한 산골로 야생동물의 출현이 빈번하여 사람의 통행이 매우 어려운 고개였다. 이에 통행인들이 자신의 몸을 보호할 목적으로 돌을 들고 고개를 넘게되었고 고개를 무사히 넘은 뒤 필요 없어진 돌을 던져 놓았는데 돌이 하나 둘 자연스럽게 쌓이게 되어 돌무덤이 되었다. 이후 이곳은 동네 주민들의 기원을 비는 성황당이 되어 전래신앙을 숭상하던 많은 사람들이 매년 1월 15일 몸을 단정히 한 후 노송나무에 금줄을 치고 오색천을 두른 후 동네 재앙을 물리치는 산신제를 지냈다고 한다. 현재는 아파트 단지와 상가가 도로를 중심으로 주변에 들어서있다. 성황당이 있었던 자리에 산신제의 유래를 기록한 당고개 표석만이 남아있다.







팥배나무숲





초안산에는 늦은 봄이 되면 팥배나무 꽃을 볼 수 있습니다.

팥배나무는 우리나라 전역 산지의 표고 100~1,300m에서 자생하는 낙엽활엽교목입니다.

참나무, 서어나무와 함께 우리나라 산 어디에서나 불 수 있는 나무입니다.

팥배나무는 열매의 모양이 팥처럼 생겼고 꽃은 배꽃처럼 생겨서 팥배나무라고 합니다.

열매는 배고픈 산새들이 좋아하고, 꽃에는 꿀이 많아서 벌과 나비가 끊이지 않습니다.

초안산에는 팥배나무만 자라고 있는 곳도 있고, 아까시나무, 갈참나무, 상수리나무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군집성이강해 집단을 형성하며 내음성이 높고 내한성도 강하며 건조한 척박지에서도 잘 생육한다.

서양에서는 이 나무가 한국의 산에 많다 하여‘Korean mountain ash’라 부릅니다.

이 나무는 또한 산성비에 특히 강해 앞으로 조경수로 전망이매우 밝으나 번식이 힘들기 때문에 산에서 자생하고 있는 팥배나무를 그대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익은 열매는 팥알만한데 앵두나 찔레 열매같이 생겼다.

배고픈 산새들의 먹이가 되기도 하고, 사람들이 과실주를 담그거나 위장병에 좋다고 하여 다려먹기도 합니다. 

나무껍질과 잎에서는 붉은색의 천연 염료를 얻을 수 있는데 색감이 아주 좋아서 앞으로 천연염료 로서의 개발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합니다.






파충류와 양서류




2006년에 서울지역에서 최초로 멸종위기종인 표범장지뱀이 초안산에서 관찰되었습니다

초안산에는 맹꽁이, 무당개구리, 청개구리 등 다양한 양서류와 파중류가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2년에는 두꺼비, 도룡뇽, 산개구리 등 3종 1500마리를 방사하기도 했습니다.






죽은나무는 어린나무를키웁니다_초안산나들길



 


초안산에서 죽은채로 쓰러져있는 나무들을 찾아보세요.

이런 나무들이 새로운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자양분으로 다른 생명들을 키우고 가꾸는 나무를 숲을 보호하는 나무(nurse log)라 부릅니다.

초안산에서는 이런 나무를 얼마나 많이 찾을 수 있을까요?








아까시나무숲


 

초안산에는 아까시나무 숲이 전체 숲 면적의 46%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까시나무는 약 25년에서 30년 정도 되었으며 아까시나무 아래층에는 참나무류가 자라고 있어 오랜 시간이 지나면 참나무 숲으로 천이가 이루어 질 것으로 보입니다.

아까시나무는 야트막한 민둥산에 심으면 다른 나무보다 빨리 자라서 10~20년내에 무성한 숲을 만들죠.

황폐해진 곳에 아카시나무를 심으면 영양분을 땅에 공급해 주고 20~30년 후에는 저절로 생육이 약해져서 다른 식물들이 잘 자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줍니다.

아까시나무는 황폐한 대지에 먼저 들어가 숲 생태계의 밑바탕을 만들어 주는 개척수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숲은움직이고변합니다. _초안산나들길





숲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합니다. 아무것도 없던 대지는 풀과 관목류로 바뀌고 마침내 나무들이 살고 있는 숲으로 변합니다. 동물과 식물들이 살고 모든 곳은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고 자라며 움직이고 변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천이라고 합니다.
초안산에서는 천이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요?




딱따구리_초안산나들길



 


나무를 쪼는 소리가 들리시나요?

초안산에는 청딱따구리, 오색딱다구리, 쇠딱다구리 들이
살 고 있습니다.

딱따구리를 '숲 속의 의사'라고도 합니다.
딱따구리들은 숲속의 다른 새보다
훨씬 많은 벌레들을 잡아먹기 때문입니다.
병들거나 죽어가는 나무 속에는 많은 벌레들이 알을 낳거나 애벌레로 살아가고 있는데, 그 벌레들을 그냥 놔둔다면 숲은 병들어 버릴 것입니다.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를 우리는 참나무라고 합니다.
참나무는 여러 종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섞일 수 있어 구별하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
초안산에는 어떤 참나무가 자라고 있을까요?

참나무 숲은 초안산 전체 산림 중에서 약 16.4%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참나무는 상수리나무와 신갈나무입니다.






녹천의유래_초안산나들길

녹천마을은 월계동의 중심인 월계2동683,685번지일대를 말합니다.

월계동의 중심이 되는 녹촌은 녹천(鹿川)이라고도 합니다.

북한산 지맥으로 이어진 크고 작은 산맥이 월계동 근방에 오면 높이 100m 내외의 야산으로 변하는데 그 사이로 계곡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곳의 하천은 두 가닥으로 시작해서 767번지 근방에서 하나로 합쳐집니다.

이 모습이 마치 사슴 머리에 난 뿔 같다 하여 녹촌이라 불렀습니다.

조선 중기때 중랑천이 범람해서 우이천까지 물이 흘러들어 가는 큰 홍수로 인해 지금의 월계로 근방 마을은 모두 폐허가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황급히 뒷산으로 이주하여 인명에는 피해가 없었지만 가재도구와 넓은 논밭이 온통 황토흙으로 뒤엎여 살길이 막막해졌음을 통탄하면서 이에 대한 대책마련을 위해 능록의 뒷산에 모여 회의를 소집 하였습니다.

회의석상에서 마을의 촌주 한사람이 지난밤 꿈에 신선을 만나 내일 있을 회의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물었을 때 신선은 내일 정오에 중랑천가에 푸른사슴 한 마리가 내려와 목욕을 할 것이니 제물을 준비해 두었다가 사슴에게 바치고 마을에서 가장 예쁘고 정숙한 처녀 한사람을 사슴에게 시집보내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답을 해주고는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반대하는 의논도 있었으나 이왕 폐허가 된 마을을 살리는 방법이니 한번 실행해보자는 의견으로 기울어 마침내 염씨(簾氏) 집의 15세 난 딸을 사슴에게 시집보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며칠 후 신선이 시킨대로 산 정상에 제물을 준비하여 사슴이 내려오기를 기다리자 과연 사슴 한 마리가산에서 내려와 중랑천에서 목욕을 하였습니다.

마을 회의에서 결정한대로 염씨 처녀를 곱게 단장시켜 제물 옆에 다소곳하게 앉혀 두었는데 목욕을 끝낸 사슴이 등을 돌리며 처녀더러 타라는 시늉을 하였다. 처녀는 사슴이 시킨대로 등에 올라탔는데 처녀를 태우고 동네를 한바퀴 돌아본 사슴이 766번지 쯤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지금의 하천이 생긴 방향으로 사라졌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사슴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자멀리서 물줄기 두 개가 나무가지 모양으로 흐르기 시작하더니 중간쯤에서 합쳐서 한줄기로 되면서 황토흙으로 뒤덮였던 마을 앞 전답이 기름진 검은색으로 변했습니다. 

사람들이 이 신기한 일에 놀라워하자 그중 한 사람이 "이건 사슴과 결혼한 염씨 처녀의 눈물이니 냇물 이름을 녹천이라 하자"고 제의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