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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7일 수요일

뜨거워지는 지구


열병앓는 지구
‘여름 장마도 아닌데, 비가 엄청 오네’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나요?

우리나라도 기록적인 폭우에 이상 한파, 초가을 폭염 등 뚜렷한 기후변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람의 체온이 평상시보다 1.5℃ 올라가면 몸에 이상이 생깁니다.

지구는 평균기온이 지난 100년간 약 1℃가 올랐습니다.

지구도 아프겠지요?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증가하면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고 기후가 변합니다.
산업화 이후 인간활동, 특히 공장이나 가정에서 화석연료 사용이 주요한 원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후가 변하면 지구에 살고 있는 생태계 동식물의 생존이 불투명해집니다.
우리도 생태계에 속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의 영향


빙하감소지난 20세기 동안 북극지대 대기온도는 약 5도 증가(이것은 지구표면의 평균 온도 상승폭보다 5배나 빠른 속도)로 인하여 빙하감소, 극지방 호수의 피빙 기간 감소 등 직접적 영향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예로서 북극지역에 있는 거의 모든 산지 빙하는 지난 20세기 동안 감소하고 있는데 스위스의 산지 빙하는 1/3까지 줄어들었습니다. 북반구 극지방에서는 1960년대 이후로 눈두께가 10%나 감소하고 있는 한편, 20세기 동안 호수와 강의 년중 피빙기간이 약 2주나 짧아지고 있습니다(UNFCCC,2005).


홍수
지구온난화의 또다른 영향으로 1966년 및 1997년 라인강 홍수, 1995년 중국 홍수, 1998년 및 2000년 동유럽 홍수, 2000년 모잠비크 및 유럽 홍수, 그리고 2004년 방글라데시 우기홍수(전국토의 60% 침수) 등 전 지구적으로 집중호우와 폭풍우에 의한 홍수가 빈발하고 있습니다(UNFCCC,2005).
가뭄 및 사막화

홍수와 더불어 가뭄현상도 지구 온난화의 중대한 영향 중의 하나인데 특히 아프리카에서 아주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니제르, 챠드호 및 세네갈 지역에서는 전체 이용가능한 물의 양이 40~60%나 감소하고 있고, 남북서부 아프리카에서는 연평균 강수량이 감소함으로써 사막화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UNFCCC,2005).


해수면 상승
지난 20세기 동안에 해수면은 평균 10~20cm 높아졌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해수면 상승이 예상됩니다. 만약 이같이 해수면이 크게 상승할 경우 방글라데시와 같이 인구가 해변에 밀집되어 있는 국가에서는 바닷물 범람에 의한 심각한 피해가 우려되고, 몰디브와 같은 작은 섬나라는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해수면 상승은 수십억 인구가 사용하는 물을 오염시킬 뿐만 아니라 대규모 인구의 이주를 유발시킬 것입니다(UNFCCC,2005).


생태계 변화
지구온난화로 인하여 나무의 조기 개화, 새들의 조기 산란, 곤충 식물 및 동물 서식지 변화, 연안 지역의 백화현상 증가, 생물 다양성 감소 등 자연 생태계도 서서히 변화되고 있습니다.








2013년 5월 28일 화요일

참꽃개꽃_쌍문역사산책길




 참꽃: 나는 봄이 되면 우리나라 야산을 붉게 물들이지

사람들은 내 꽃으로 봄에 화전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두견새가 밤새 울다가 토한 피와 색이 같아서 두견화라고도 해.

개꽃: 나는 사람들이 먹지 못한다고 해서 개꽃이라고 불러.
그래도 지나가는 나그네가 나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꾸 걸음을 멈출 정도로 아름다워 산객이라고도 해.

참꽃: 음유시인 김소월은 나를 주제로 하여 아주 유명한 시도 만들었지... 아마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두 알거야..

개꽃: 나는 신라시대 수로부인도 보고 감탄했을 정도로 유명한 꽃이지. 그 꽃을 꺾어 가져다준 노인이 헌화가를 만들기도 했어.

참꽃: 나는 진달래.

개꽃: 나는 철쭉.

우리는 다른  점도 있지만 비슷한 형제야
크지는 않지만
봄이 되면 온 산을 붉게 물들여
봄의 절정을 알리지...

우리는 진달래와 철쭉이야...






직박구리_쌍문역사산책길


직박구리라는 새 이름은 시끄럽게 우는 새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옛날 시골에선 역시 시끄럽게 떠들어 댄다고 '떠들이 새'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지요.
기후와 환경이 변화하면서 생태계도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요즘 도시와 농촌, 산간지방을 막론하고 개체수가 눈이 띄게 늘어난 텃새가 직박구리입니다.
도시지역에 많이 심는 작은 과일나무가 직박구리에겐 아주 좋은 먹이가 됩니다. 직박구리는 과일뿐만 아니라 꿀도 아주 좋아하는 새입니다.






잎의일년_쌍문역사산책길





 나의이야기를 들어보세요...
겨울이 지나고 해가 길어져 갑니다.
바람도 이제는 살랑살랑 내 몸을 스쳐 지나갑니다.

멀리 땅 속 뿌리가 말합니다. 이제 물을 보내겠노라고.
곧, 우리는 밝은 곳으로 나갈 것입니다. 봄입니다.
껍질을 뚫고 나옵니다. 세상은 밝고 바람 또한 시원합니다.

나는 몇 개월 동안
몸에 있는 물을 배출하는 일(증산작용),
빛을 이용해 양분과 산소를 만드는 일(광합성작용)
숨 쉬는 일(호흡작용)을 해야 합니다.

꽃이 피는 봄,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단풍드는 가을이 옵니다.
다람쥐들은 열매를 모으기 위해 분주합니다.
엽록소가 없어지고 내 본연의 색인 황토 빛 피부가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단풍들었다 하지요.

이제 다시 내년을 준비해야 합니다.

나는 신갈나무 잎입니다.




방학쌍문옛지명_쌍문역사산책길



쌍문동과 방학동의 옛 지명들을 찾아보면 다양한 마을과 지역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쌍문동
쇠죽골 : 쌍문1동 내시 묘가 있는 아랫마을. 동대문 시장에 소를 매매하러 가기위해 시골에서 올라온 소장수들이 이곳에서 쇠죽을 먹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소여물골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제성겻 : 계성과 그의 효성 지극한 아들이 살았다는 마을. 쌍문제1동에 해당합니다.
해등천 : 현 쌍문제2동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소군래라는 하천에서 깨끗한 물이 이 마을을 거쳐 방학동으로 흘렀는데, 물이 바닷물처럼 맑아서 해등천이라 불렀습니다. 현재, 해등로라는 길이 있습니다.

방학동
원당이: 소원을 비는 신당이 있어서 생긴이름으로 한자로 원당리(元唐里)입니다.
가살피 : 방학동과 도봉동과의 경계지점에 있는 마을
도당마을 : 현재 방학 3동 신동아 4차 아파트 단지 일대로 도봉산자락에 복숭아꽃, 오얏꽃 등 이 만발하는 평화로운 마을로, 요순시대 요 임금의 칭호인 제요도당씨(帝堯陶唐氏)에서 '도당'이라는 글자를 따서 도당마을이라 하였답니다.
금잇들 : 방학동 도당마을 앞에 있는 들. 거머리가 많았다고 합니다.
성고개 : 바위가 성(城)과 같은 고개 밑에 있는 마을. 바위를 돌아 들어간다 하여 암회리(岩回 里)라고도 불렀습니다.





발바닥공원_쌍문역사산책길



도봉구 발바닥공원은 마른하천인 방학천을 따라 조성된 생태공원입니다.




1960년 중반에 형성되기 시작한 무허가 판자촌을 2002년에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생태공원으로 조성하였습니다.

예전에는 쓰레기와 오물 악취가 풍기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구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쉼터로 재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판자촌에서 녹색 공원으로 변신한 운명이 평소 하찮게 여기다 관리의 중요성을 새삼 인정받고 있는 우리 몸의 발바닥과 비슷하다고 해서 그렇게 붙였다고 합니다.


환경교육센터

도봉구청은 2003년 여유 공간을 용도 변경하여 환경교육센터를 만들었습니다. 

전체 건평이 45평에 강의실 하나 밖에 없는 작은 공간으로 시작하였고, 2012년 교육장의 증축으로 인해 교육시설이 한곳 더 생겼습니다. 

도봉환경교실은 특히 2002년 환경단체들의 연대활동으로 지자체 기초의원으로 당선 시킨 환경후보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도봉환경교실은 2003년 직영 운영에서 2004년 (사)환경교육센터로 위탁 운영되면서 프로그램 중심의 환경교육센터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도봉환경교실은 발바닥 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공원의 자연환경을 이용하여 자연체험활동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다양한 환경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성인대상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생활실천 프로그램, 지역 단체 및 학교로 찾아가는 단체지원 환경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환경교육 자원봉사단체인 자연해설단과 함께 도봉환경교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도봉환경교실 환경배움터!
- 배움터에는 건강한 환경에서 잘 자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도담도담 교육장, 교육준비실, 사무실로 구성.


- 환경배움터 2012년 10월부터 환경교육 프로그램 진행.


- 오전 단체 환경프로그램의 확대 운영가능 – 기후변화 스쿨, 자연체험활동, 수교실 등 다양한 주제의 환경교육 프로그램의 운영이 가능해짐.


- 기존의 초등학교 중심의 프로그램에서 주부, 청소년, 지역단체 환경동아리 등 환경교육 프로그램 참여 대상의 폭이 넓어 짐


환경교육 프로그램 예약은 인터넷 및 전화로 사전 협의하시기 바랍니다. 
[전화: 02)954-1589 / www.ecoclas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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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문역사산책길 문화재와 함께



쌍문역사산책길에는 다양한 문화재와 역사가 있습니다.

조선시대 10대 임금인 연산군묘, 세종대왕의 둘째 딸 정의공주묘, 사천목 재실, 수백년 동안 이용된 원당천 그리고 수령이 1000년이나 된 서울시 지정 보호수 1호 방학동 은행나무 등 다양한 문화재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연산군묘

조선시대 제10대 임금인 연산군(1476~1506년)과 왕비였던 거창군부인 신씨의 묘로 왕릉보다는 간소하나 조선시대 전기 능묘석물의 조형이 잘 남아있습니다.



연산군은 성종 7년(1476) 성종의 큰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폐비 윤씨입니다.
1494년 왕위에 올랐으나 1506년 왕직을 박탈당하고 강화 교동으로 추방되었다가 그 해에 죽었습니다. 

부인 신씨가 연산군 무덤을 강화에서 현재의 이곳으로 옮겨 달라 청하여 정덕8년(1513) 옮기에 되었고, 부인 신씨의 묘, 연산군의 딸과 사위의 무덤이 있으며, 혼유석·장명등·향로석 등 석물이 서 있습니다. 
연산군은 비록 왕을 지냈으나 그 지위가 군으로 강봉되었기에 무덤을 묘라 하였습니다.






방학동 은행나무

방학동 은행나무(放學洞 銀杏나무)는 서울특별시 지정보호수 제1호(1968.2.26.) 및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3호(2013.3.28.)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나무의 높이는 24m, 둘레는 9.6m, 수령은 600년으로 서울특별시에서 최고령 그룹에 속하는 은행나무입니다.

이 은행나무는 그 모습이 매우 고상하고 아름다우며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신성시하였고, 이 곳에 불이 날 때마다 나라에 큰 변이 생겼다고 하는 일화가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도봉구에서는 은행나무의 생육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인근 아파트 단지가 조성될 때 나무의 생육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아파트 구조를 변경하였으며, 그 후 은행나무 인근에 다세대주택으로 인해 나무가 가지를 뻗지 못하는 등 생육환경이 문제가 되자 주택을 매입하여 생육환경 조성을 위한 공원조성사업을 추진하여 녹지 공간 및 주민쉼터를 확보하였습니다.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546번지에 위치한 방학동 은행나무는 그 규모가 크고, 수령이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어 1968년 2월 26일 서울특별시 보호수 1호로 지정되어 있었다. 본래는 은행나무의 동남쪽 200m 지점 은행나무가 한 그루 더 있어, 이 두 은행나무를 “부부 은행나무”라 불렀다고 하는데 현 기념물 지정 나무는 수나무이며, 암나무는 신동아아파트 건립 당시 벌목되었다고 합니다.

기존에 관리되고 있었던 서울특별시 보호수 목록은 추정 수령이 880년에 달하고 있으나, 금번 문화재 지정 조사 시 실시한 국립산림과학원의 과학적 수령조사 결과 600년으로 측정되었다. 이는 천연기념물 및 시지정 문화재로 지정된 수목들과 비교하여도 최고령그룹에 속하는 것으로 천연기념물 제59호 <서울 문묘 은행나무>의 수령 702년 다음으로 수령이 오래된 것입니다.








원당샘공원

원당샘은 600여년 전 파평윤씨 일가가 자연부락인 원당마을에 정착하면서 이용하였다고 합니다. 마을 이름을 따서 원당샘으로 불리워지고 수 백년 동안 생활용수로 공급되었습니다. 그러나 2009년부터 물이 흐르지 않아 2011년 지하수를 연결하여 원당샘이 마르지 않고 흐를 수 있도록 복원하였으며, 북한산둘레길과 인접되어 있어 주민과 등산객의 왕래가 빈번한 곳으로써 원당샘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하게되어 연산군묘 및 은행나무와 함께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지는 새로운 도봉구의 문화명소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위치 : 도봉구 방학동 547번지 일대

방학동은행나무, 원당샘, 연산군 묘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

도봉산 연봉의 남쪽 작은 봉우리인 시루봉 기슭 도봉구 방학동 산 63-1번지에 양효공신도비와 묘소(서울시 유형문화재 제50호)가 있습니다.

신도비는 세종의 부마 안맹담과 둘째 딸 정의공주의 묘가 있는 묘역 아래에 세워져 있고, 묘에는 각각 묘갈과 혼유석이 갖추어져 있으며, 석등과 문인석 4구가 서 있습니다. 신도비 비문의 끝부분에 ‘成化丙戌立’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세조 12년(1466)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묘역 뒤로 올라가면 양효공의 딸 정경부인 안씨의 묘와 덕종비 소혜왕후 한씨의 오라비 서릉부원군 한치례의 묘도 있습니다. 또 양효공 내외의 묘소 뒷편 동남쪽 산기슭에는 인조∼숙종 때의 대신 목서흠과 목내선 일가의 묘역이 있으며, 그 북쪽으로는 최근에 천주교묘지가 설치되기도 하였습니다. 아울러 남쪽 방학로 건너에는 연산군 묘역이 있습니다.





원당샘공원, 연산군묘, 방학동 은행나무 교통편

전철4호선 창동역(2번출구) 또는 녹천역(1번출구) 이용 (도보 5분 거리)

버스 1133번, 1157번 창일중학교 앞 하차, 1138번 창1동주민센터 하차




2013년 5월 22일 수요일

방학동 유래



방학동의 유래



방학동 동명의 유래에 관해서는 도봉서원(道峯書院)의 창건과 관련하여 조선시대 어느 임금이 도봉서원의 터를 정하기 위하여 도봉산 중턱에 앉아 있다가 학(鶴)이 평화스럽게 놀고 있는 것을 보고 방학(放鶴)이라하였다는 이야기와 또 이곳 지형이 학이 알을 품고 있는것 같다고 하여 방학(放鶴)이라고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학(鶴)과 관련된 전설은 아마도 한자(漢字)로 방학리(放鶴里)란 지명이 이루어진 후에 덧붙여진 이야기로 보인다.

또한 곡식을 찧는 기구인 방아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우리말로 ‘방아골(굴)’로 불리던 것을 한자로 기록하는 과정에서 음이 비슷한 방학리(放鶴里)로 고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최근에는 방학동의 원래 이름은 암회리(岩回里)였는데, 도봉산 줄기가 동남방으로 뻗어 내려오다가 다시 되돌아와 암회리라 했던 것을 학(鶴)이 날아가는 형국의 지세로 보아 풍수지리가의 조언으로 일제시대 ‘방학(放鶴)’이라 작명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 지역이었고, 1914년 노해면 방학리로 되었다. 1963년 서울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방학동으로 되었고, 1973년 도봉구 관할로 되었다. 1975년 도봉동에서 분동하였으며 1980년 방학1·2동으로 분동, 1988년 2동이 다시 2·3동으로 분동되었다. 법정동인 방학동은 행정동인 방학1~4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교통은 방학로가 마을의 중심을 지나며, 성북구에서 의정부시로 나가는 도봉로가 동쪽으로 지나고 있다. 예로부터 도심에서 멀지 않은 지역이어서 북한산 자락에는 왕실과 귀족들의 묘소가 많이 있다.






방학동은 자연마을인 암회리, 도당리, 원당리 일부와 방학리가 합쳐져서 방학동이 되었습니다.

방아골 현재 방학2동 방아공종합사회복지관 일대

도당마을 현재 방학3동 신동아 4차아파트 단지일대

암회리 현재 방학3동 지역

원당리 현재 대원군묘 일대



쌍문동 유래


쌍문동 유래
쌍문동 동명(洞名)의 유래는 몇 가지가 전해온다.
하나는 현 쌍문동 286번지 근처에 계성(鷄聲)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계성과 그 부인이 이름모를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 아들이 생시에 부모를 정성껏 모시지 못한 것을 후회하여 부모의 묘 앞에 움집을 짓고 여러해 동안 기거하다가 죽자 마을 사람들이 그의 효성을 지극히 여겨 그의 묘 근처에 효자문(孝子門)을 두 개 세운데서 쌍문(雙門)이라는 지명이 유래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옛날에는 현 창동 우체국부근에 열녀문이 두 개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며 또 쌍갈래길에 이문(里門)이 있었으므로 ‘쌍갈무늬’가 쌍문으로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최근에는 ‘쌍문(雙門)’은 효자문(孝子門)이 두 개라 쌍문이라 한것인데, 효자 남궁지와 그의 처 하동 정씨(鄭氏), 그의 아들 효자 남궁 조 부자가 고종으로부터 효자문을 받았는데 부자(父子)의 묘소가 노해파출소(옛 쌍문동 중심지)에서 볼 때 남과 북에 있어 ‘쌍문’이라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해등촌면에 속하였으며, 1912년에 편찬된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경기도편에 나타나는 양주군 해등촌면 12개 리 가운데 소라리(所蘿里)·계성리(鷄聲里)지역에 해당한다. 1914년 노원면과 해등촌면이 통합되어 노해면이 설치되었을 때 소라리·계성리가 통합되면서 쌍문리라는 지명이 처음 나타났다.
1963년 1월 1일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이 서울시 성북구 노해출장소에 편입되면서 쌍문리는 창동 동사무소 관할 하에 있었다. 1973년 성북구에서 도봉구가 분리 신설되면서 도봉구에 편입되었으며, 법정동인 이 동은 행정동인 쌍문1~4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1960년 이전까지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을 위주로 하고 있었으며, 그 후 인구가 급증하기 시작하여 쌍문로와 도봉로 주위에는 상가가 밀집되어 있다. 자연마을로 계성동, 쇠죽골, 해등천 등이 있었는데, 이 마을들이 합쳐져 동을 형성하였다.
▲박수겻 고개 : 쌍문리에 있는 고개
▲쇠죽골 : 쌍문1동 내시묘(內侍墓)가 있는 아랫마을인데, 동대문시장에 소를 팔러 가기 위해 시골에서 올라온 소장수들이 이곳에서 쇠죽을 먹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소여물골이라고도 불리었다고 한다. 경기도와 서울의 연락도로로 주막도 있었다.
▲제성동 : 계성과 효성 지극한 아들이 살았다는 마을. 지금의 쌍문1동 지역.
▲해등천(海等川) : 현 쌍문2동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소군래라는 하천에서 깨끗한 물이 이마을을 거쳐 방학동으로 흘렀는데, 물이 바닷물처럼 맑아서 해등천이라고 불렀다고 함.



끊임없는 물의 여행_쌍문역사산책길


물을 여행하는데 꼭 필요한 힘은 태양열입니다.
물은 태양열을 받아 수증기가 되고 구름이 되어 다시 비와 눈으로 내리는 일을 쉴새없이 반복합니다.

지구에 있는 전체 물의 양은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태초부터 지구가 갖고 있는 물의 양은 단 한 방울도 늘거나 줄어들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물은 지하수로, 강물로, 바닷물로 변하면서 끊임없는
순환여행을 하고있습니다.
그래서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들은 물을 이용해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